작성일 : 13-07-13 13:08
재난 후 정신적 충격, 국내선 치료 전문병원 없어
 글쓴이 : 푸른마음신경정신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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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나機 사고로 본 事後 대응 시스템]

한국은 - 평생 고통 '외상 후 스트레스'
정부 차원의 지속적 관리 없어… 천안함때도 검진 후 치료 끊겨

미국은 - 국가가 나서 참전군인 등 진료
아시아나 항공기 사고 즉시 처음부터 정신과 의사 면담

미국 샌프란시스코 공항에서 사고가 난 아시아나항공기 탑승객 11명이 8일 귀국했다. 이들은 대부분 '보이는' 외상은 크지 않았으나 사고로 놀란 기색이 역력했다. 재난 후 많은 사람이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겪고 있지만 국내에는 이를 치료하는 시스템이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전문 의료 기관이 없을 뿐 아니라, 국가 차원에서도 이를 관리하는 시스템이 없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는 사고 후 느끼는 단순한 공포나 불안 증상이 아니다. 만성적으로 뇌의 기억력 등이 떨어지고, 의식적으로 또는 무의식적으로 사고 기억을 피하기 위해 갖가지 노력을 하면서 '일생이 변해가는' 병(病)이다.

죽음의 공포를 경험하더라도 건강한 사람은 대부분 '급성 스트레스'를 겪다 회복된다. 하지만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겪는 사람은 초기에 이를 적극적으로 치료하지 않으면 만성적으로 심한 증상을 겪으면서 인생 자체가 '트라우마'로 망가진다.

◇'트라우마' 체계적 관리 안 돼

1990년대에 사고가 유난히 자주 발생했다. 94년 성수대교 붕괴, 95년 삼풍백화점 붕괴, 97년 대한항공 비행기 괌 추락 사고 등이 일어났다. 무너진 백화점에서 17일 만에 생존자가 나오면서 사고를 겪은 사람들의 정신적 충격에 대한 염려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에 대한 관심이 생겨났으나 치료 개념은 여전히 없었다.


	외상 후 스트레스 Q&A 표
정부 차원에서 처음으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환자의 치료에 개입한 것은 2004년 대구 지하철 사건 때다. 당시 대구시는 생존자들에게 치료비를 보조하면서 공포나 악몽 등을 호소하는 일부 사람에게 치료를 지원했다. 하지만 이때만 해도 본인이 원하는 일부에 그쳤다. 국내에서 처음이자 유일하게 사고 후 모든 생존자를 대상으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검진을 한 것은 2010년 천안함 폭침 때이다. 당시 생존자 58명 전체를 정신과 전문의가 검진했다. 하지만 치료는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본인이 기억을 떠올리기 싫어해 치료를 거부하거나, 지속적으로 관리할 의료 시스템이 없었기 때문이다.

국내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가운데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전문적으로 진료하는 의사도 많지 않다. 재난 후 찾아오는 환자가 드물고, 국가 차원에서도 문제를 심각하게 보지 않아 전문 병원이 없기 때문이다.

◇미국은 사고 직후 바로 정신과 의사 투입

미국 샌프란시스코 공항에서 아시아나항공기 사고가 발생한 이후 처리 과정을 눈여겨볼 만하다. 사고 직후 정신과 의사들이 직접 승객과 환자들을 면담했다. 치료 초기부터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에 대응하는 것이다.

미국에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전문 의사도 많다. 이처럼 미국의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치료가 체계적인 이유는 이라크전쟁 등 파병이 잦았기 때문이다. 미국 군인은 참전(參戰) 전후 필수적으로 정신 상태 검사를 받아야 한다. 우울증이나 불안증이 일정 수위 이상이면 자동으로 보고돼 참전에서 제외되며, 참전 후 증상이 생겼다면 치료를 받아야 한다. 퇴역 후에도 마찬가지다. 미국 내 참전 군인을 대상으로 하는 전문 병원(Veterans Affairs hospital)에서 평생 국가가 보장하는 치료를 받는다. UC샌디에이고 정신건강의학과 스티브 고 교수는 "파병 군인은 본인이 사망하지 않아도 동료 군인의 사망 기억 등으로 자살하는 경우가 많아 미국 내에서 문제가 됐다"며 "이 때문에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는 죽을 때까지 치료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가톨릭의대 채정호 교수는 "국내에도 어떤 트라우마든 처리할 수 있는 전문 센터가 국가 차원에서 최소한 한 개는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 Post-Traumatic Stress Disorder)
죽음을 초래할 정도로 충격적인 사고를 경험한 뒤, 반복적으로 사고를 떠올리거나 꿈을 꾸며 심한 고통을 겪는 증상. 만성적인 우울·불안 증상을 보일 수 있으며 뇌의 변연계(감정 조절 기능) 및 해마(기억력 담당) 장애로 기억력 저하와 인지 장애를 겪을 수 있음.
 
조선일보
나해란 의학전문기자